[애도문] 삼가 지관 스님의 명복을 빕니다

삼가 지관 스님의 명복을 빕니다.

종교간 모임에서 스님의 환한 웃음을 뵈온 지가 엊그제인 것 같은데,
스님께서 갑작스럽게 입적하셨다는 소식에 놀라움과 슬픔이 마음 가득합니다.

스님과 함께 민족의 화합과 일치를 위하여, 그리고 종교간 화합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던 기억들이 여전히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스님께서는 이 땅에 화해와 평화, 정의를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셨습니다.
“인평불어 수평불류(人平不語 水平不流, 사람이 공평무사하면 어느 누구도 불평하지 않고, 흐르는 물도 평탄한 곳에서는 조용히 머물게 마련이다)”라는 말로 우리 사회의 종교편향을 지적하셨습니다.

스님은 한국 근대불교사의 상징적인 존재이셨습니다.
불학연구의 최고 권위자이자 수행자이고, 교육자였으며 종교지도자였습니다.
금석문(金石文) 분야의 권위자였던 스님은 ‘역대고승비문총서'(전7권)를 편찬했으며, 불교대백과사전인 ‘가산불교대사림(伽山佛敎大辭林)’ 시리즈 등을 펴내시기도 하였습니다.
지 난해 9월 입원 직전 스님께서는 ‘사세(辭世)를 앞두고’라는 제목의 임종게(臨終偈)를 남기셨다고 합니다. 스님은 “무상한 육신으로 연꽃을 사바에 피우고/ 허깨비 빈 몸으로 법신을 적멸에 드러내네/ 팔십년 전에는 그가 바로 나이더니/ 팔십년 후에는 내가 바로 그이로다”라고 전한 것입니다.

스님께서는 열반에 드셨지만, 이제 남아 있는 숙제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몫입니다. 스님께서 살아 생전 다져오신 이 땅에 화해와 평화, 정의의 길을 더욱 넓고 탄탄하게 깔아 남남 갈등을 극복하고, 우리 민족이 염원하는 남북 통일을 이루어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지구촌 곳곳에서 종교간 분쟁과 갈등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그에 따라 쌓여 가는 증오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있는 지금, 7대 종교들이 서로 손잡고 민족의 앞날을 위해 화합하는 보기 좋은 모습을 전 세계에 하나의 본보기로 널리 알려야 할 것입니다.

죽음에 대한 해석이 종교마다 다르더라도 죽음을 앞에 둔 우리 모든 사람들은 한결같이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욱이 불교의 큰 어른이신 지관 스님의 입적 앞에서 우리는 더욱 겸손하게 스님께서 보여주신 치열한 삶의 길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스님께서 우리 곁을 떠나신 슬픔을 천주교 신자들을 대신하여 불자 여러분과 함께 나누며 스님의 명복을 빕니다.

2012년 1월 3일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위원회
위원장  김 희 중  대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