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2주간 목요일: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다.

찬미 예수님, 코로나19에 따라 미사가 3월 18일까지 잠정 중단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본당 홍보분과 홈페이지 운영위에서는 미사 중단기간에 [매일미사]를 근거로 하여 복음과 복음묵상을 매일 올립니다. 미사가 중단된 지금,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주님의 은총을 청하는 의미 있는 시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너는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복음: 루카 16,19-31
그때에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
그러다 그 가난한 이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곁으로 데려갔다.
부자도 죽어 묻혔다. 부자가 저승에서 고통을 받으며 눈을 드니,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곁에 있는 라자로가 보였다.
그래서 그가 소리를 질러 말하였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
부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할아버지, 제발 라자로를 제 아버지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
저에게 다섯 형제가 있는데, 라자로가 그들에게 경고하여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아브라함이,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하고 대답하자,
부자가 다시 ‘안 됩니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가야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 하였다.
그에게 아브라함이 이렇게 일렀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는 두 인물을 대조적으로 보여 줍니다. 부유하고 호화롭게 살았던 “어떤 부자”와 가난하고 비참하게 살았던 “라자로”입니다. 이 세상의 삶이 끝나고 죽음 이후의 모습도 대조적입니다. 라자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평안을 누리지만 부자는 불 속에서 고통을 받습니다.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는 죽음 이후의 세상이 현세와 다르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현세에서 고통을 받던 사람은 위로를 받고, 편하고 즐거운 생활을 하였던 사람은 고통을 받습니다.

오늘 복음이 말하고 있는 비유는 우리에게 두 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첫째는 재화의 문제입니다. 루카 복음은 부와 가난의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집니다. 잔치를 벌이며 호화롭게 살았던 부자와 그 집에서 구걸하지만 먹을 것을 얻지 못하는 라자로의 대조는, 공동체 안에 존재하는 가난의 문제에 대한 지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루카 복음은 또한 재화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숙고하게 합니다.

둘째는 가르침의 실천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가난한 이들을 배려하는 내용은 이미 구약 성경에도 나와 있었습니다. 예언자들도 하느님의 길로, 정의의 길로 돌아오도록 호소합니다. 새로운 가르침이 필요하다기보다는 이미 주어진 가르침을 실천할 필요가 있습니다. 흔히 말하듯이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믿기 힘든 일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가르침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공동체 안에 소외되고 어려운 이들을 돌보며 그들과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재능과 재화는 공동체와 공동선을 위한 것입니다. (허규 베네딕토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