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2주간 토요일: 너의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

찬미 예수님, 코로나19에 따라 미사가 3월 18일까지 잠정 중단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본당 홍보분과 홈페이지 운영위에서는 미사 중단기간에 [매일미사]를 근거로 하여 복음과 복음묵상을 매일 올립니다. 미사가 중단된 지금,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주님의 은총을 청하는 의미 있는 시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너의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

복음: 루카 15,1-3.11ㄴ-32
그때에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다.
그런데 작은아들이,
‘아버지, 재산 가운데에서 저에게 돌아올 몫을 주십시오.’ 하고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가산을 나누어 주었다.
며칠 뒤에 작은아들은 자기 것을 모두 챙겨서 먼 고장으로 떠났다.
그러고는 그곳에서 방종한 생활을 하며 자기 재산을 허비하였다.
모든 것을 탕진하였을 즈음 그 고장에 심한 기근이 들어,
그가 곤궁에 허덕이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그 고장 주민을 찾아가서 매달렸다.
그 주민은 그를 자기 소유의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다.
그는 돼지들이 먹는 열매 꼬투리로라도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아무도 주지 않았다.
그제야 제정신이 든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내 아버지의 그 많은 품팔이꾼들은 먹을 것이 남아도는데,
나는 여기에서 굶어 죽는구나.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렇게 말씀드려야지.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저를 아버지의 품팔이꾼 가운데 하나로 삼아 주십시오.′’
그리하여 그는 일어나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아버지가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일렀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 주어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 먹고 즐기자.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즐거운 잔치를 벌이기 시작하였다.
그때에 큰아들은 들에 나가 있었다.
그가 집에 가까이 이르러
노래하며 춤추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하인 하나를 불러 무슨 일이냐고 묻자,
하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아우님이 오셨습니다.
아우님이 몸성히 돌아오셨다고 하여
아버님이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큰아들은 화가 나서 들어가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와 그를 타이르자,
그가 아버지에게 대답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여러 해 동안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저에게 아버지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한 마리 주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 아버지의 가산을 들어먹은 저 아들이 오니까,
살진 송아지를 잡아 주시는군요.’
그러자 아버지가 그에게 일렀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서, 주요 인물은 아버지와 두 아들 곧 큰아들과 작은아들입니다. 이 비유는 아버지의 자비를 강조합니다. 아버지는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집을 떠난 작은아들을 기다리며, 또 큰아들의 불평을 들어 주고 그를 위로하는 사람입니다. 이 비유는, 하느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잘 드러내고 하느님의 특징적인 모습을 요약해서 전하기에 많은 이들에게 찬사를 받습니다.

이 비유를 읽으며 작은아들의 모습과 우리 자신을 비교해 봅니다. 죄를 짓고 하느님에게서 멀리 떠나 방종한 생활을 한 작은아들이 죄를 지으며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겹쳐지기 때문입니다. 작은아들이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하고 발길을 돌리는 모습은, 죄를 뉘우치고 돌아서서 하느님과 화해하는 회개의 의미를 잘 드러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돌아오는 이들에게 잔치를 베풀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큰아들은 우리가 생각해야 할 또 다른 모습입니다. 착실하게 아버지의 명을 따라 살았던 큰아들은 작은아들의 귀환을, 회개한 아들이 돌아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큰아들 또한 우리의 모습입니다. 공동체를 지키며 열심히 활동하지만 언제나 그 자체가 기쁨이 되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오히려 무거운 짐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회개한 이를 받아들이는 하느님의 자비가 큰아들에게는 불평과 불만을 자아내기도 합니다. 그는 아버지가 ‘늘 함께 있다.’라고 한 말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여러분은 두 아들 가운데 어느 모습에 더 가깝습니까? (허규 베네딕토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