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3주간 화요일: 자기 형제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찬미 예수님, 코로나19에 따라 미사가 3월 18일까지 잠정 중단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본당 홍보분과 홈페이지 운영위에서는 미사 중단기간에 [매일미사]를 근거로 하여 복음과 복음묵상을 매일 올립니다. 미사가 중단된 지금,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주님의 은총을 청하는 의미 있는 시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복음: 마태오 18,21-35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그러므로 하늘 나라는 자기 종들과 셈을 하려는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임금이 셈을 하기 시작하자 만 탈렌트를 빚진 사람 하나가 끌려왔다.
그런데 그가 빚을 갚을 길이 없으므로, 주인은 그 종에게
자신과 아내와 자식과 그 밖에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갚으라고 명령하였다.
그러자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제발 참아 주십시오. 제가 다 갚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 종의 주인은 가엾은 마음이 들어, 그를 놓아주고 부채도 탕감해 주었다.
그런데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 하나를 만났다.
그러자 그를 붙들어 멱살을 잡고 ‘빚진 것을 갚아라.’ 하고 말하였다.
그의 동료는 엎드려서, ‘제발 참아 주게. 내가 갚겠네.’ 하고 청하였다.
그러나 그는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서 그 동료가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었다.
동료들이 그렇게 벌어진 일을 보고 너무 안타까운 나머지,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죄다 일렀다.
그러자 주인이 그 종을 불러들여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네가 청하기에 나는 너에게 빚을 다 탕감해 주었다.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그러고 나서 화가 난 주인은 그를 고문 형리에게 넘겨
빚진 것을 다 갚게 하였다.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오늘의 묵상
사랑하는 것이 먼저일까요? 사랑받는 것이 먼저일까요? 아니면 용서하는 것이 먼저일까요? 용서받는 것이 먼저일까요? 대부분 사랑받고 용서받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비유는 용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하늘 나라는 자기 종들과 셈을 하려는 어떤 임금”과 같습니다. 만 탈렌트는 당시 기준으로 셈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금액인데, 여기에 만 탈렌트를 빚진 종이 있습니다. 주인은 그의 빚을 탕감해 줍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에게는 모질게 빚을 갚으라고 합니다.

자비를 입었지만 자비를 베풀지 않은 종에 관한 이 비유는, 주인 곧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의 빚을 탕감해 주시고,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누군가의 죄를 용서한다는 것은 내가 용서받은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그대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용서하기 전에 이미 용서받았다는 것을 먼저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실천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이미 우리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하느님의 자비를 경험하였기 때문입니다.

주인이 종의 빚을 탕감해 주는 것은 “가엾은 마음”에서 비롯합니다. 가엾은 마음은 자비를 말하는 다른 표현입니다. 어떤 대가나 조건 없이 자비를 베푸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용서의 실천은 ‘마음에서’ 시작합니다. 죄를 용서받은 체험은 다른 이들의 잘못을 용서하는 원동력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것처럼, 우리도 우리에게 잘못한 이들을 용서하고 자비를 베푸는 것입니다. (허규 베네딕토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