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천주교회 창립기념제 천진암성지 (2010년 6월 24일)

2010년 6월 24일, 제32회(1979~2010) 한국천주교회창립기념제에 참석하기 위하여 별양동성당 교우들이 버스 2대에 나눠 타고 천진암 성지를 다녀왔습니다.


천진암성지(天眞菴聖地)

 

경기도 광주군 퇴촌면 우산리 앵자봉 기슭에는 조그만 암자가 하나 놓여 있다. 어느 때인가 없어져 주춧돌만 남았던 이 보잘것없어 보이는 암자가 바로 한국 천주교의 발상지라고 할 수 있는 천진암이다.

 

남한산성에서 광주 읍내로 가는 국도 중간쯤에 ”번내”가 있고 이곳에서 동쪽으로 한참 달려서야 닿을 수 있는 산골인 천진암에는 이제 끊임없는 순례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 행렬에 참가한 순례자들 얼굴에는 스스로 신앙을 찾아 나선 한국 천주교회의 신앙 선조들에 대한 뿌듯한 자부심이 가득하다.

 

한국 천주교회의 출발은 이승훈이 북경에서 영세하고 돌아온 1784년 봄으로 잡는다. 하지만 그보다 5년이 앞선1779년 겨울 바로 이곳 천진암에서는 이미 자랑스런 교회사가 시작됐다.

 

당시 천진암 주어사에서는 당대의 석학 녹암(鹿菴) 권철신이 주재하는 강학회가 있었다. 권철신·일신 형제와 정약전·약종·약용 형제, 이승훈 등 10여 명의 석학들은 광암(曠菴) 이벽의 참여와 함께 서학에 대한 학문적 지식을 종교적 신앙으로 발전시키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강학회가 끝날무렵 이벽이 지은 ”천주 공경가(天主恭敬歌)”와 정약종이 지은 ”십계명가(十誡命歌)”는 이러한 강학회의 결실을 잘 드러내 준다.

 

이벽의 권유로 이승훈이 북경에 가서 세례를 받고 귀국한 후 가장 먼저 이벽은 그로부터 세례를 받고 마재의 정약현과 그형제들, 양근의 권철신, 일신 형제들에게 전교한다. 또 그 해 가을에는 서울 명례방에 살던 통역관 김범우를 입교시키고 수도 한복판에 한국 천주교회의 터전을 마련했다.

 

한국 교회의 발상지로서 천진암은 교회 사적으로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사실은 오랫동안 잊혀져 왔다. 지난1960년에 와서야 이곳 지명들이 문헌에 근거해 밝혀졌고 마을 노인들의 증언과 답사를 통해 한국 천주교의 요람으로서 천진암의 가치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1970년대 말부터 천진암 성역화 사업이 급진전되었고 1980년 6월에는 천진암 일대 12만 평의 땅을 매입, 그 초입에 가르멜 수녀원이 문을 열었고 노기남 대주교의 이름으로 그 해 6월 24일 제막된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 기념 비석이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조선 교구 설정 150주년을 기념한 1981년 한 해에는 괄목할 만한 변화가 있었다. 정약종, 이승훈, 권철신·일신 형제의 묘가 이벽의 옆으로 나란히 모셔진 것이다.

 

광암 이벽 선생을 기념하기 위한 광암 성당이 세워졌고 100년이 걸리는 한국 천주교회 창립 기념 순례 대성당을 비롯해 창립사 연구소, 박물관, 신학 연구소, 강학당, 피정의 집 등이 지어졌거나 지어질 계획이다. [출처 : 주평국, 하늘에서 땅 끝까지 – 향내나는 그분들의 발자국을 따라서, 가톨릭출판사, 1996]